나무의 귀
가지마다 붙어 있던 소리들을
나선의 밑동으로 밀어넣고
새들이 푸른 귀를 찾아 날아갔다
펄럭이던 그늘보자기가
어진 나무의 소리를 다 싸서 가고
가끔 햇볕의 뼈대만 흔들리고 있다
어디선가 날아온 비닐이 머플러처럼 나뭇가지를 감고,
아직 남은 몇 장의 귀가
은색의 소란을 듣고 있다
이파리들의 소임은 나무의 귀,
햇볕의 등에 그늘을 붙였다 떼는 일
바람의 행선을 알리는 일
엽록의 달팽이관에 새들의 졸음을 재워주기도 한다
은밀한 파동이 들어있는
몇 칸의 서랍이 만들어지고 있을 오동나무
햇빛 두어 채 개켜두거나 혹은,
새들의 사서함이거나 노숙하는 구름이 묵어갈 서랍들
따뜻하라고,
은색의 비닐머플러가 감겨져 있다
늙은 오동나무는 늙은 바람의 목덜미이다
무거운 귀를 툭툭 흘리고
맨몸으로 서 있는 몇 칸 서랍이지만
봄이 오면
푸른 귀들이 빼곡, 차오를 것이다
- 장요원, 시 ‘나무의 귀’
지금은 나무의 푸른 귀들 모두 떠나고 은밀한 파동이 몇 칸 서랍에 있을 계절입니다.
햇볕의 뼈대만 흔들리는 숲.
그러나 우리들 사이에도 정겨운 그늘이 들 듯, 나무도 그늘을 들이겠지요.
이 추위도 머지않아 떠나고 곧 봄을 예고할 겁니다.
'좋은글 좋은생각(인용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겨울 땅을 밟는 이들 (0) | 2023.01.20 |
---|---|
동백꽃 (0) | 2023.01.20 |
훗날 지금을 기억한다면 (0) | 2023.01.20 |
오다가다 쓰레기통 (0) | 2023.01.20 |
사랑하는 일 (0) | 2023.01.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