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궁화가 피었어요
무궁화가 문을 활짝 열어젖혔습니다.
소문을 지피지 않아도 이른 아침부터 찾아온 벌들,
노란 옷 한 벌 걸쳐 입듯 온몸에 꽃가루를 묻혀 나갑니다.
꽃그늘에 들어봐야 무궁화의 매력을 알게 됩니다.
꽃잎 저 안쪽 발간 속살은 남몰래 감춘 열정,
연노랑 꽃술은
갈 길 잃은 이에게 방향을 일러주는 횃불입니다.
백여 일간 꽃이 피고 지기를 반복함은 끈질긴 생명력입니다.
볼수록 정이 드는 나무는 제 본분 다하는 미더운 사람 같습니다.
분내 옅은 수수한 여인 같지만
다섯 장 꽃잎은 볼륨 있는 몸매를 숨긴 우단 치마입니다.
바람이 불 때면 허벅지를 드러내는 시폰치마와는 멀어 보입니다.
그래서 단아한 이미지를 보여주는 것일까요.
한 생을 잠근 꽃들이 바닥에 누워있습니다.
어디에도 상한 흔적이 없습니다.
꽃잎이 뜯겨나가지도 않았고
구차한 속이 드러나는 험한 꼴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호상입니다.
- 최선옥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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