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자루 경전
바지런한 스님이 마당을 쓸고 있습니다.
이쁘다, 이쁘다,
곁을 내주는 착한 등을 쓸어주듯
대웅전 앞마당을 쓰다듬습니다.
지나는 기척에
흙먼지 일까 잠시 멈춰 고르는 숨.
빗자루가 스님을 받치고 있습니다.
마치, 두 자루의 붓입니다.
언제 비질 마치나,
걱정을 얹어 바라봐도
한 자 한 자 정성껏 눌러 쓰는
필사본筆寫本입니다.
쓰고 되쓰고 마음에 새기는 글자입니다.
햇살 한줌이 행간에 머물고
추녀 끝 풍경이 쟁그렁 쟁그렁,
붓자국 선명한 마당을 읽고 있습니다.
***
'멍 때리기'라는 말을 하더군요.
머리가 복잡해질 때 가끔은
마음을 비워두는 시간도 필요한 듯 보입니다.
그러나 그것도 약간의 생각을 얹고 걱정을 얹으니,
완전한 비우기란 참으로 어렵습니다.
- 최연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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