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파리 내시경
키 낮은 그늘에서 올려다보면
바람의 각도를 고루 뒤집는 이파리들
한쪽 눈을 감은 채 이파리 구멍을 통해 저쪽 중심을 살핀다
예민한 햇살은 내내 스위치를 끄지 않고
붉어진 표정이 참았다가 토해내는 호흡에 역류하는 물관
계절의 신트림이 메스껍다
눈치 빠른 저쪽도 눈을 찡그린 이쪽을 들여다본다
이미 걸어 나간 시간과 걸어올 시간을 단숨에 읽으려는지
이마에 손챙을 얹어 미간을 좁히는 낯익은 얼굴
방향을 트는 빛에 통증이 나의 오후를 움켜쥔다
늦게 들춘 병명에 당황한 바람 하나가 휘익, 떨어진다
햇살을 뒷배로 가진 나무처럼
안쪽을 비추는 익숙한 눈빛에 감춰둔 나의 속내가 부글거리는데
더부룩한 시절을 비워내고 싶은 나무가 주섬주섬 심호흡으로 갈아입는다
한줌 생각을 챙긴 나도 그늘 밖으로 천천히 걸어 나간다
- 시, '이파리 내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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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레가 먹은 이파리 구멍이 마치 내시경 같습니다.
손챙을 한 채 올려다보면, 그 작은 구멍으로도 하늘이 보이지요.
걸어 나간 시간과 걸어 올 시간이 모두 읽힙니다. 내시경처럼.
더부룩함을 비워내듯 나무는 잎을 떨어뜨리거나
호흡을 참느라 붉어지기도 하는 아름다운 시월입니다.
- 최연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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