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려니숲*에 가서 알았습니다
내가 오래전부터 좋아한 냄새를 이 숲이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방금 이곳을 다녀간 소나기도 이 흙의 냄새를 물고 날아갔습니다
흙의 체취는 오래전 내 기억 속에 살았습니다
삼나무, 졸참나무, 때죽나무, 산딸나무, 서어나무 …
길목에 펼쳐진 풍경에 감전되어 자박자박 걷습니다
길은 아는 길은 아는 곳으로 낯선 길은 낯선 곳으로 통합니다
세상의 시비(是非)도 이곳까지 따라오지 못했습니다
나는 오래된 불통을 소통으로 바꾸어서 주머니에 넣었습니다
넘을 수 없는 마음도 이곳에 오니 야트막한 언덕으로 보입니다
팔이 잘려나간 나무들은 송글송글 피가 묻어있습니다
이 상처를 가라앉히느라 얼마나 많은 밤을 지새워야할까요
나는 내 작은 상처에도 꼬박 밤을 새운 적이 있습니다
흙비의 얼룩마저 나무들의 무늬가 됩니다
상처 많은 나무들이 껴안아주겠다고 두 팔을 벌리고 있습니다
탁한 바람들이 이곳에서 몸을 씻고 다시 도시로 돌아갑니다
* 제주도에 있는 숲
- 문설, 시 '사려니숲'
생각이 골똘하다 못해 머리가 아플 때 숲으로 갑니다.
숲은, 내가 살아가는 세상처럼 각박하지 않고
서로를 밀어내지 않고 오순도순 어울려
제 나름의 색깔과 향기를 내뿜습니다.
시시비비도 한낱 덧없음으로 만드는 숲,
우리들의 숲도 이처럼 푸르게 소통하고 어울리면 얼마나 좋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