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살게 하는 것
만약 내가 한 사람의 가슴앓이를
멈추게 할 수 있다면,
나 헛되이 사는 것 아니리.
누군가의 아픔을 덜어줄 수 있다면,
혹은 고통 하나를 가라앉힐 수 있다면,
혹은 기진맥진 지쳐 있는 한 마리 울새를
둥지로 되돌아가게 할 수 있다면,
나 헛되이 사는 것은 아니리.
- 에밀리 디킨슨의 '만약 내가' -
시나브로 떨어지는 낙엽들이
쓸쓸함을 더해주는 요즘,
포도 위에 뒹구는 양버즘나무의
커다란 이파리를 툭툭 차며 걷다보면
어디쯤에선가 울고 싶어집니다.
까닭도 없이
인생이 허무해지는 그런 날,
디킨슨의 이 시가 작은 위로가 됩니다.
아직도 세상 어딘가에
나의 어깨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내가 알게 모르게 행한 작은 선행이
누군가에게 겨울을 나는 따뜻한
외투가 되어줄 수도 있다는 믿음이
나를 살게 하고 앞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그거 아세요?
그대 있기에
내가 이 쓸쓸함을 견딜 수 있다는 사실을.
- 백승훈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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