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글 좋은생각(인용글)

우산의 시간

따시딸레!박상면 2019. 7. 16. 19:51


엄마를 따라간 그날, 공장에는 두 개의 문이 있었다

왼쪽을 열면 정오의 해가,
오른쪽을 열면 구름이 내걸리고

심장 쪽을 믿는 엄마가 왼쪽 문을 열자
구름을 숨긴 포자들이 날아들었다
섶다리 밀려온 수상한 기미가 함께 떠다녔다

검은 하늘은 자주 무너졌다
손잡이 망가진 아버지는 사진 속에서만 웃었다

꽃무늬 양산을 내던지고
우산공장으로 출근한 엄마
챙 좁은 우산 같은 월급 속으로 뛰어든 우리는
젖은 서로의 어깨를 쓸어주었다

지붕에 대못이 박히는 시간
살이 부러진 여름은 길에 나뒹굴고
구멍 난 하늘이 방 안 양동이 속으로 뛰어내렸다
구름 사촌이었던 우리는 퐁, 퐁, 리듬에 맞춰 잠이 들었다

정오의 해를 찾아 나선 부도난 양산의 계절
먹구름 몰래 펼쳐 든 웃음에서
녹슨 쇳소리가 났다


- 최연수, 시 '우산의 시간'


우산과 양산. 각기 기능은 달라도 외부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비를 비하든, 햇빛을 피하든
서로의 우산이나 양산이 되어주는 날이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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