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막한 저녁
비가 내리고 어둠이 저녁의 꼬리를 물고 가던
유월 어느 날 나는 그대를 찾아가다
넘어지고 말았다
기적소리가 울렸는지 잘 기억나지 않지만
멀리서 바람소리가 들렸던 것 같다
사방엔 연초록의 흔들림만 분명한데,
매일 다니던 길인데,
그대를 찾아가다 넘어지고 말았다
아무도 일으켜주지 않는 길을 홀로 걸어가다
비의 방지턱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비가 내리고 꽃이 졌다는 건
한 사람의 영혼이 길을 떠났다는 뜻이다
달을 꿈꾸던 꽃의 심장 속에 오래 잠들어 있던
영혼이 어둠의 건너편을 향해 손을 흔든다
적막한 저녁이 저물고 있다
- 김남권, 시 ‘적막한 저녁’
매일 다니던 길인데, 보이지 않는 얼굴.
눈물처럼 비가 내리고 꽃이 졌습니다.
이제 적막한 시간이 저물고 있습니다.
꽃을 닮은, 꽃다운 그들을 추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