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와 거울
건물을 나오다가 유리에 꽝, 이마를 박았습니다.
문이 열린 줄 착각해 순식간에 벌어진 일,
어찌나 아픈지 그 자리에 주저앉았습니다.
마침 뒤에 오던 분이 괜찮으냐고 물었습니다.
내가 유리에 부딪치지 않았다면,
그분이 큰일 날 뻔 했다고 했습니다.
그분도 나처럼 착각을 하고 뒤를 따라온 겁니다.
이마는 일주일동안 욱신거렸습니다.
그것이 거울이었다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겁니다.
거울과 유리의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거울은 유리 뒷면에 수은을 입힌 것,
바라보는 대상만 비추기에
그곳에서 매무새를 고치고 문을 찾아 나갔을 겁니다.
유리는 무엇이든 투시하기에 경계가 모호합니다.
유리는 확산하는 성질을,
거울은 반영하는 성질을 가졌습니다.
거울은, 겉모습뿐 아니라 마음까지도
잠시 들여다보는 기능을 합니다.
유리에 주의 표시를 해두지 않은 잘못도 있지만
그날, 무턱대고 경계 밖으로만 나가고자 하는 나를
유리는 경고한 겁니다.
때로 되비추고 내 안쪽 깊숙한 곳까지 세심히 살피는
거울이 필요한 때가 참 많습니다.
- 최선옥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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