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치
바싹 마른 멸치 똥을 떼어낸다
그 넓은 바다에서 누가 던진 그물에 걸렸기에
날 비린내를 끌어안고
꼼짝없이 이민 길에 올랐을까
그 어느 그물코에 꿰여 이곳까지 옮겨
머리도 창시도 다 버리고
끓는 냄비 속도 마다치 않고
잡것들과 섞여 온몸 흐무러지게 우려내지만
결국엔 버려지는 몸일 텐데
이끼 무성한 틈새라도 좋다
터를 잡아보려고
낮은 잡풀에도 몸을 낮춘 채
똥줄 타게 달렸다
허풍인 줄 알면서 은빛 비늘 부서져라 웃어줬다
믿기지 않지만 속아줬다
맨 프라이팬에 볶여 소주 안주가 되고서야
불빛도 없는 방에 들어
두 눈 부릅떠 팔딱이는 지느러미를 재운다
- 김미희, 시 '멸치'
작은 몸이 우려내는 국물이 어찌나 깊은지요.
뼈째 바친 몸이 어찌나 고소한지요.
살기 위해 몸부림쳤던 흔적들이 바다의 맛을 품고 왔습니다.
단단하게, 야무지게 오늘을 여미며 그 근성을 음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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