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은, 참을성이 많다
무뚝뚝한 철문이 바깥을 힘겹게 밀었다
녹슨 늑골 사이, 손 하나가 슬며시 빠져나오고
폐활량을 늘린 골목이 서둘러 손을 안으로 밀어 넣었다
보이지 않는 등을 배웅하는 늙은 목소리가 저 안쪽에서 구겨졌다
뻐꾸기 벽시계가 감정이 삭제된 울음을 일곱 번 반복하고 돌아갔다
고개 뺀 키다리 꽃이 바깥을 중계했다
한 도막의 기억이 새순을 밀어 올리는지
문밖이 궁금한 틀니가 흘린 말들을 집느라 골목이 몸을 튼다
지문 닳은 페이지를 넘기면 어슴푸레 내력이 읽히는 골목은
언제부터 골목이었을까
낱장이 부욱 뜯겨도 함께 늙어가는 집들이 다시 기록을 채운다
문 열고 나온 입들이 소문을 부풀려도
퉤 퉤 몰상식을 뱉거나 덜 꺼진 고민을 발로 짓이겨도 묵묵히 귀만 세우는 골목
골목은, 참을성이 많다
- 시, '골목' -
남녀가 부둥켜안은 장면을 흘긋거리던 사춘기가 있습니다.
그때, 가로등 꺼진 골목은 그들의 부끄러운 사랑을 확인하던 장소였지요.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골목은, 함부로 걸어도, 소중한 누군가의 손을 잡아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곳임을.
드러내고 싶지 않은 민낯을 가려주는 곳, 대로변으로 나갈 수 없는 마음을 가려주는 곳임을.
누구에게나 골목 같은 비밀은 있습니다.
그렇기에 훤히 읽히지는 않지만, 공감하기도 하지요.
- 최연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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