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알이 있었다
둥글고 물기 많은 여유
아무도 닮아있지 않고
무엇에도 물들지 않아
너는 귀가를 서두르지 않는,
무지개는 정말 찬란했을까
찬란하다고 믿고 싶었을까
먼 빛 파랑새를 좇아가는
뒷모습 물거품으로 사라지는
내 소녀와 흡사한 소쉬르의 기호학
드레스같이 레이스같이 자의적인 흰 빛의
들장미를 보았던 한 아이는 나였고
파우스트처럼 늙은 후에도 나였고
만사에 부는 바람으로 계약을 맺는 삶에
너는 귀가를 서두르지 않는,
만지면 형체가 없어지는 세계의 끝에서
아무도 모르면 사실이 되는 단추를 달고
아무 말이나 나를 증명하는 나선의 계단에서
아직 너는 귀가를 서두르지 않는,
쉿! 들추면 사라지는 순수
언제나 슬프게 내 눈은 너를 바라본다
- 김성희, 시 '소녀'
무엇에도 물들지 않은 순수.
언제나 슬프게 기다리지만 다시 오지 않네요.
귀가를 서두르지 않는 소녀.
순간순간이 소중했음을 뒤늦게야 깨닫는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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