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첩이 맛있다
파랄수록 아껴 먹었다
실천만이 진정한 약속이라고
망고 얼룩이 갈색 반점을 둥글게 그려나갔다
익지 않은 말이 시간의 눈썹을 지나 그늘의 소유자가 되었다
구속당하지 않으려고 식은 열이 오른다
한쪽 넘길 때 그 안에 웅크리고 있던 옹이가 떠다니는 숨을 당긴다
숙성된다는 건 목젖에 걸려있는 말꼬리에 먼지를 닦는 일이다
봉인되지 못한 여백의 청가시를 꺼내 접시를 닦고
너를 돋우는 따끈한 소반 정갈하게 차리고 싶어
주어진 재료로 무엇을 만들지 까칠한 입맛까지 부르면
아침햇살에 기억의 거미줄을 걷고 모락모락 김이 나는 그 순간들
창고 속 단감상자 위에서 신메뉴를 출시 중이다
기호와 암호를 푼 요리는 담백하지만
굴릴수록 혀에서 꼭대기로 천천히 고솜고솜 올라온다
- 오현정, 시 '수첩이 맛있다'
일기를 쓰라고 합니다.
그날을 떠올리며 쓴 생각은 나를 곱씹게 한다고 합니다.
일기는 쓰지 못해도, 수첩에 빼곡하게 적은 일과며 기호와 암호들.
펼쳐보는 그 순간이 아주 흥미롭습니다.
수첩은 나를 자주 일깨워주고 기억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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