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사람
그가 뒤통수를 내어준다 나에게 나도 내 뒤통수를 깃털처럼 내어준다 뒷사람에게 우리는 뒤통수를 얼굴로 사용하는 사이 무덤덤하게 본척만척 서정과 서사가 끼어들지 않아서 깔끔하지 서로 표정을 갈아 끼우지 않아도 평생을 함께 하지 반복해서 노력하지 않아도 서로 가까이 다가가지 않을 권리를 위하여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비행기를 타고 내릴 때 서로 헐렁헐렁한 고무줄 바지가 되지 어떤 좌석에 앉아서 굵고 짧은 잠에 빠져들 때 입을 벌리고 자도 보자마자 잊히니까 평화롭지 정면이나 측면이나 측백나무처럼 한결같지 동일하게 지루해도 숨통이 트이지 내 뒤통수와 모르는 사람의 뒤통수가 내 등뼈와 모르는 사람의 등뼈가 내 엉덩이와 모르는 사람의 엉덩이가 물컹하게 겹친 적 있다 몇 번을 앉았다 일어나도 뒤끝이 없지 포스트잇처럼 등을 깊게 파낸 원피스를 입은 여자가 총총 멀어져 간다 - 김나영, 시 '모르는 사람' '우리는 뒤통수를 얼굴로 사용하는 사이'. 그래서 모르는 사람입니다. 잘 알아도 표정의 반은 지워졌지요. 그래도 얼굴의 소통이 더 정겹고 반갑습니다. 웃는 눈이 있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