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더운 사람 같은
"개에게서 남자를 느꼈다.
다만 곧게 쭉 벋은 다리, 길이와 두께를 만족시키는 목, 탄탄한 어깨,
유려한 곡선에 눈이 멀었다면 내가 사람의 탈을 쓴 개일지도 모른다.
마초에게서 이상적인 남자를 본 건 내 취향이 남달라서가 아니다.
개 같은, 아니 개보다 못한 사람이 많은 세상에서 마초의 처신이 돋보였기 때문이다."
마초라는 개에게서 사람의 훈기며 의젓함과 미더움을 느꼈다는
송혜영 수필가의 <그 남자, 마초>를 읽다가
그의 죽음에 이르러 뚝, 눈물 한 방울이 떨어지며
팔년 전 잃어버린 개를 떠올렸습니다.
덩치 큰 사람이 말을 걸면, 안주인이 어찌될까 긴장하고
바깥주인의 자동차가 골목으로 들어올 때면
먼저 알고 달려나갔습니다.
산길에선 앞서 달려갔다가 다시 내려와 길안내를 했고
다리 아파 쉬면, 끝까지 옆에 붙어있고
슬픈 얼굴을 하면 마치 쓰다듬듯 혀로 얼굴을 핥아주었습니다.
그가 유리문 바깥에서 끙끙거릴 때 입고 있던 겉옷을 걸쳐주었다가
시어른께 꾸중을 듣기도 했습니다.
어느 일요일, 외출할 때 안주인을 올려다보던 표정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것이 오년간 함께 한 그와의 마지막이었습니다.
마중 가듯 문밖을 나섰다는데 영영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 최연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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