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김밥 같은 골목이
아랫마을과 친해지고 싶어도 수줍어 말도 못 붙인 아이
기웃거린 걸음을 물웅덩이에서 꺼내
절룩거리는 골목을 끌며 나갈 때
컹 컹 귀 밝은 소리가 동네를 흔들었다
얘!
뒤통수에 닿은 음성에 흘끔 돌아본 그 얼굴에
우리 집에서 놀다 갈래?
생각보다 먼저 튀어나간 내 말이 들러붙었다
아이는 노란단무지마냥 밝아졌다
엄마가 차려놓은 김밥으로 네 개의 눈이 모여들고
가지런한 것들을 나눠먹으며
그 애 얼굴이 오목조목 모여 앉은 김밥 같다는 생각을 했다
건네주고 건네받은 한 입 크기의 동글동글한 한나절을 따라
옆구리 터진 웃음이 문밖으로 새어나갔다
어둑함이 뉘엿뉘엿 찾아드는
우엉줄기 같은 막다른 길을 돌아나간 그 아이가 아직
저만치서 손을 흔들며 말한다
나는 꽁다리가 맛있어
창밖 소등한 골목이 먼 그 때, 한 줄 김밥 같다
***
브랜드화 되어서 가격도 천차만별이지만, 김밥만큼 만만한 것도 드물지요.
먹는 즐거움도 크지만
지진이다, 태풍이다, 어려움을 겪는 이웃들도 잠시 생각해보는 날입니다.
- 최연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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