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파리동네
사생활이 보호되지 않는 동네,
수상한 네 개의 발들이 자주 골목을 열고 들어온다
뭉게뭉게 냄새 뿜는 스컹크를 하얗게 소독된 아이들이 따라가고
하이에나는 밤마다 음식찌꺼기만 수거해간다
신축아파트 이삿짐이 기린 목에서 미끄럼을 즐기고
얼마 전 검은 물소가 옆집 담을 들이받기도 했다
도벽이 심한 고양이는 명부에서 제명되었다
하루를 횡단한 젖은 발의 누 떼를 고시원 창문들이 내다본다
그곳엔 몇 년째 갇힌 울음들이 있다
동네에 흉흉한 소문이 돈다
얼룩말을 밟은 아이는 끝내 깨어나지 못하고
504호 하마들이 쿵쿵 발소리를 내려 보낸다
발톱세운 404호가 천장을 할퀸다
치통 앓는 악어와 악어새는 공생관계
요즘 부쩍 눈을 흘겼더니 나를 슬슬 피하는 무리도 있다
꼬랑지가 올라가거나 내려가는 것은
모두 서열 탓이다
- 시, '사파리동네' -
약육강식의 논리만이 지배하는 세계, 서열에 의해 지배되는 세계는
동물세계입니다.
사람이 동물과 다른 것은,
이성이 있고 부끄러운 줄 알고 도리를 알기 때문일 겁니다.
욕심만을 찾는 사회, 서열과 권력만이 지배하는 사회는 결코
인간다운 세상이 아닙니다.
- 최연수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