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못을 빼내려다
못대가리가 떨어졌다
남은 못 몸뚱아리
붉게 녹슬어 있다
못을 박은 벽지 가장자리가
벌겋게 물들어 있다
지나버린 시간들이 있다
탱탱하게 녹이 슨 대못처럼
어쩔 수 없이 길들어진
내 가슴 가운데를 물들여놓은
시간들이 있다
더는 박을 수도 뽑을 수도 없는
더는 아무것도 아닌 무엇도 되지 못하는
그렇게 주저앉은
시간의 궁지窮地
- 홍경나, 시 '녹'
더는 아무것도 아닌, 무엇도 되지 못하는 궁지에서
어쩔 도리없이 쩔쩔매다가 그대로 주저앉는 경우가 있습니다.
녹처럼 벌건 흔적만 남은, 추억이라 할 수 없는 것들.
그냥 그대로 흘러가도 좋았을 것을, 자꾸만 흔적을 남기는 것들.
그래도 남의 가슴에 대못 하나 박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흘려버려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그게 오히려 홀가분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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