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란 영화를 함께 보고 난 후
비가 쏟아지는 국제극장 골목에서 우산대로 부인을 마구 후려쳤다는 김수영 시인은
아방가르드한 애인 같은 아내가 없었다면
목마른 대지가 빨아들이는 폭우가 될 수 있었을까
바람에 일어서는 풀의 기둥,
가장 자유롭게 흐르는 매혹의 구름이 되었을까
뭉게뭉게 시와 연애하는 동안
빵도 왕관도 주지 않는 애첩이
지난한 피를 찍어 꿈틀거리는 살을 도려내고 꿰매라고만 했을 것이다
순결하다는 것은
그 사람이 아픔을 숨기고 홀로 산속을 헤매다 짐승을 만나 울고 있을 때
바위 아래 길을 내주고 나눌 수 있는 그 사람에게 내 전부를 주는 것이다
길이란 말하자면
한 영혼이 만나는 첫, 빗방울이자
마지막, 숨이고 싶은 것이다
- 오현정, 시 '순결하다는 것'
흙을 묻히지 않은 몸이 아니라
다가간 마음이 깨끗해야 순결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첫’과 ‘마지막’을 함께 한 그것이 순결한 마음일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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