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아날로그
눈꺼풀이 무거운 동네 이발소,
춘곤증에 겨운 영감님이 연신 고개를 끄덕거립니다.
무료한 그림자가 수시로 방향을 바꾸고
뜨거운 여름날처럼 자신을 끓게 했던 시절에 가있는지
영감님의 입 꼬리가 간혹 올라갔다 내려오곤 합니다.
문전성시를 이루던 때가 있었지요.
길게 자란 한숨을 잘라내고 덥수룩한 근심을 말끔히 다듬으며
바리깡 하나로 버틴 세월입니다.
몇 안 되는 단골이 함께 늙어간다는 푸념이 문턱을 넘습니다.
늙으면 눈치만 느는지 힘겨운 삼색기둥이 툴툴 돌아갑니다.
한 가족이라고 믿었던 아이들은 유행하는 헤어숍으로 몰려가고
조금 전에도 베컴머리를 태운 오토바이가 갓 출고된 속도를 앞세워
동네 한가운데로 길게 가르마를 내며 달려갔습니다.
구레나룻 무성한 앞산, 이팝나무가 하얗게 비누거품을 풀고
허공에 쓱쓱 문댄 낮달이 면도 방향을 재고 있네요.
벽시계의 뻐꾸기가 뻐꾹, 뻐꾹,
비눗갑에 고인 적막을 한 번씩 휘젓고 돌아갑니다.
속도를 섬기는 시대, 아날로그는 때로 둔하고 불편합니다.
그래도 그때의 정만은 그리워서
오월의 첫날에 적어봅니다.
- 최선옥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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