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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손

빈손 늘 연필을 들고 있었던 오른손. 오늘 내려놓으니, 허공이 와서 손금을 슬며시 들고 있다. 빈손도 손. 겨우내 장갑을 끼고 있었던 왼손. 봄이 와서 장갑을 벗으니, 아지랑이 와서 따습게 잡고 있다. 빈손도 손. - 최동문, 시 '빈손' 가득 쥐고 있는 손금 사이로 봄이 흐릅니다. 공기와 햇살이 다디답니다. 빈손이지만 빈손이 아닌 손. 오늘은 어떤 감정을 거머쥐게 될까요.

최선의, 최선밖에

최선의, 최선밖에 마치 내일 죽을 것처럼 살되 영원히 살아갈 것처럼 배우라. - 간디 마치 오늘밖에 시간이 없는 것처럼 최선을 다해 배우고 행동하라는 말씀입니다. 내일도 있고 모레도 있는 긴 시간이 아니고 절박한 듯 살아가는 최선의 방법. 그러나 배울 것은 영원히 살아갈 것처럼 적극적으로 배워야 하는 것. 최선의, 최선밖에 다른 방법이 없는 듯합니다.

연리지(連理枝) 사랑

연리지(連理枝) 사랑 해가지고 달이 뜨고 하늘은 땅을 품어 미래의 문을 열고 만물은 대륙의 품에 안겨 방긋방긋 봄이 돋아난다 흔들리며 피어나서 눈물 없이 사는 삶 어디 있겠냐마는 가뿐숨을 몰아쉬며 쓰러지지 않으려고 외로운 나무가 나무에게 기대어 위로받는다 시달켜서 상처난 영혼을 서로 보듬고 고통을 나누며 단단하고 강해져서 대지 깊숙히 내린 뿌리 태양이 뜨는 아침 하늘 우러러 내일이 있어 중심잡고 일어선다 들끓어 올랐던 젊은 날의 열정다해 일생을 정직하게 나무로 살아오면서 세상바람이 흔들면 흔들리는 대로 모든 허세와 집착을 털어버려도 뿌리는 결코 흔들림없이 님의 수액과 체온으로 내가 살고 나의 수액과 체온으로 님이 살아 빛이고 희망되어 함께 손잡고 산넘고 강 건너 영원으로 가는 길 노을이 곱다 서로가, 서..

너도바람꽃

너도바람꽃 너도바람꽃 : 미나리아재비과의 여러해살이풀로 개울가 산그늘에 자생한다. 이른 봄 포엽 가운데에서 길이 1cm 정도의 꽃대가 나와 그 끝에 흰색 꽃이 한송이씩 달린다. 꽃의 지름은 2cm 정도이고 꽃받침 조각은 5개이며 달걀 모양이다. 꽃잎은 2개로 갈라진 노란색 꿀샘으로 되어 있고 수술이 많다. ​ 너도바람꽃 ​ 맵찬 북풍에도 겨우내 꿈쩍 않던 얼음이 햇살의 간질임에 스스로 몸을 풀고 물소리도 명랑하게 산을 내려가는 세정사 계곡에서 나는 보았네 ​ 꽃을 찾아 바쁘게 눈길 발길 옮기다가 제풀에 지쳐 다리쉼을 하다가 우연히 눈에 띈 흰 꽃 한 송이 햇빛과 연애한 바람이 남몰래 피워낸 너도바람꽃을 ​ 글.사진 - 백승훈 시인

봄이 오는 마당에서

봄이 오는 마당에서 벌써 바람결이 다르다. 코끝에 달라붙는 느낌이 가볍다. 미세먼지 때문에 겨우내 닫아 놓았던 창문을 활짝 연다. 딱히 맑은 날씨는 아니지만 답답한 공기를 바꿔놓기에는 안성맞춤이다. 눈 비비고 마당을 내려다본다. 새들이 목축이고 목욕까지 하느라 분주하다. 날이 풀리니 다른 먹잇감을 찾았는지, 문지방 닳도록 드나들던 숫자는 부쩍 줄었지만 여전히 마당은 새 사랑방이다. 포르르 총총 새들의 날갯짓이나 걸음걸이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입꼬리가 올라간다. - 심명옥, 수필 '봄이 오는 마당에서' 중에서 창문을 열어놓아도 찬기가 없습니다. 묵은 기분을 걷어냅니다. 답답한 마음도 날려보냅니다. 이 상큼함으로 다시 시작입니다.

다시 돌아올 희망을 안고

다시 돌아올 희망을 안고 삶에는 열리고 닫히는 수많은 문들이 있다. 어떤 문들은 조금 열어둔 채 떠난다. 다시 돌아올 희망을 안고. - 헬렌 니어링 내가 관여해서 지속되는 일이 있고 나와는 상관없이 닫혀버린 일들이 있습니다. 여지를 남겨둔다는 것, 기회나 가망성이 있다는 것은 작은 구멍 같은 것이어도 희망으로 남아 나를 당기곤 합니다. 그것을 향하며 한 걸음씩 나가는 삶입니다.

직선 그리고 곡선

직선 그리고 곡선 직선과 곡선은 무슨 이념이거나 슬로건도 아니다. 그저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사이다. 디지털에 목매달지 않아도, 아날로그의 향수에 빠지지 않아도 살아가고,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혼재된 디지로그로 생활하고 있듯이, 묻고 싶은 것은 경영학이나 정치학처럼 '그러니까'하는 사회과학적 시각만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인문학적 사유방식도 외면해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 신창선, 수필 '직선 그리고 곡선' 중에서 직선으로 직진하는 일상과 때로 우회하는 곡선의 삶이 공존합니다. 어느 것이 옳고 그른가의 문제가 아니라 어느 것이 적절한가를 적용하는 지혜로운 삶의 방식입니다.

빈 그릇 채우기

빈 그릇 채우기 빈 그릇은 비어 있으므로 배가 고프다 어떤 양심을 채워야 든든한 하루를 지탱할 것인가 삶의 끝자락에 앉아 쥐고 갈 것보다 버리고 갈 것이 더 많음을 알아야 하는 어수선한 세상에서, 살아있는 날 까지 인생의 지위를 움켜쥐고 바둥거리는 우리, 욕심을 희생하고 가진 것을 양보한다면 내가 위대해지는 순간을 안다고 했는데, 인생은 희망이 아니라 임무임을 안다는 것은 열심히 살아온 자신의 허무를 깨닫는 지혜인것을, 모든 슬픔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면 빈 그릇 채우는 일은 나를 배부르게 채우는 것. - 박종영 님

제주백서향

제주백서향 제주백서향 : 팥꽃나무과의 늘푸른 떨기나무로 잎은 어긋나고 꽃은 2~4월에 핀다. 꽃에서 매우 좋은 향기가 나서 천리향으로도 불린다. ​ 제주백서향​ 제주 곶자왈에서 꽃보다 먼저 향기로 말을 거는 꽃을 만났다 어디선가 원시의 북소리 둥둥둥 들려올 것만 같은 그늘진 숲속 함초롬히 피어 있던 제주백서향 사람의 발길 닿지 않은 곶자왈의 빈 틈을 가만가만 향기로 메우고 있었다 ​ 글.사진 - 백승훈 시인

강 건너 빈 밭에 떨어지는 비

강 건너 빈 밭에 떨어지는 비 강 건너 빈 밭에 내리는 비가 산 아래 잠시 쉬고 있는 듯 자리 잡은 작은 집 창 옆까지 와서 저쪽 비 내리는 세상을 보여주고 있다. 소나무들은 어깨를 다 드러내놓고 창가에서 비를 맞고 있다. 계속 해서 비는 내리고 솔잎에서 털려 나오고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래도 봄비는 솔잎 어디에 숨겨놓은 비밀이 있는 것처럼 자꾸 솔가지를 흔들어 털고 있다. 비는 또 강가로 내려가서 녹지 않은 강 위로 쏟아지고 있다. 누구 하나 혼자 욕심내지 않고 너 나 할 것 없이 서로 나누어 쓰고 있는데 혹시 누가 숨겨 놓은 것을 몇 사람만 함께 쓰고 있는지 그것이 두껍게 언 강물 밑에서 아깝게 흘러가고 있는지 이번에는 언 얼음이 깨져라 하고 쏟아 붓고 있다. - 송성헌 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