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글 좋은생각(인용글) 1992

은방울꽃

은방울꽃 은방울꽃 : 백합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 풀로 산지에서 자란다. 5∼6월에 종 모양의 흰색 꽃이 피는데 총상꽃차례로 10 송이 정도가 아래를 향해 핀다. 꽃말은 '순결, 다시 찾은 행복'이다. ​ 은방울 꽃 하나가 입춘 지나 우수가 코앞인데 봄 눈 내리고 뺨을 스치는 바람이 차다 코로나 역병 때문에 마스크에 꽁꽁 갇힌 채 두 번이나 꽃 향기 없는 봄을 보낸 탓일까 눈을 하얗게 이고 선 북한산 바라보면 저 산 어디쯤에서 마주쳤던 어느 봄 날의 은방울꽃이 자꾸만 생각난다 ​ 글.사진 - 백승훈 시인

냄새 혹은 기억

냄새 혹은 기억 그때 우리는 어떤 냄새에 심각하게 주목해야 했다. 딱히 무슨 냄새라고 말하기가 어려웠지만 달달하고 끈적끈적한 냄새에 우리에게 익숙한 약품도 섞인 듯했는데 아무튼 그 냄새 때문에 조금 전에 먹은 빵이 목구멍으로 다시 올라올 것 같아 거북했다. - 임레 케르테스, 소설 '운명' 중에서 실제로 맡아지는 냄새가 있는가 하면 어떤 풍경 혹은 사건으로 소환한 냄새가 있습니다. 그것은 그리움이 되거나 돌이키고 싶지 않은 냄새이기도 합니다. 누군가에게 남겨지는 나의 냄새, 나의 기억은 상쾌하고 오래 그리운 것이 되고 싶습니다.

유지경성(有志竟成)

유지경성(有志竟成) 유지경성(有志竟成) : 의지를 가지고 있으면 마침내 이룬다. 뜻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성공한다는 말. - 출전 : 후한서(後漢書) 〈경엄전(耿弇傳)〉 ‘유지자사경성야(有志者事竟成也)’에서 ‘유지경성’이 유래했다. 성급히 결과를 얻어야겠다는 생각만 거두면 이루어지는 것이 있습니다. 천천히,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이루어지는 일이 있습니다. 그래서 꾸준히 그 일을 계속해야 하고, 포기하려다가도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것입니다.

봄볕 한아름은 어떤가

봄볕 한아름은 어떤가 농밀하게 잘 익은 봄기운 한가락 가슴에 새기는 동안 간밤 서릿발 이고 선 푸른 댓잎 사이로 죽음이 삶을 부르듯 낮고 고요하게 매끄럽고 날렵한 몸 부딪치는 소리 더디 오는 봄에 소망함은 보기 좋은 풍경 하나 대문에 매다는 일 어김없이 찾아와 제자리를 지키는 저 봉긋한 매화의 젖가슴 어두운 세상 간절한 향기로 반짝이고 훤히 비치는 산골물에 발을 담그니 솜털 버들강아지 보송보송 입술을 열고 마음은 오래된 흙처럼 순해지는데 미망의 하루 봄볕 한아름은 어떤가 - 박종영 님

나팔꽃

나팔꽃 나팔꽃 : 메꽃과의 한해살이 덩굴식물로 3m까지 자라고 꽃은 7~8월에 피며 꽃색은 자주색, 흰색, 붉은색 등 다양하다. 꽃말은' 아침의 영광'이다. ​ 나팔꽃 입춘날 아침 먼 산 희끗한 잔설을 보며 한여름 나팔꽃을 생각하네​ 수직의 전봇대를 휘감아 오르며 아침마다 씩씩하게 나팔을 불어대던 나팔꽃​ 입춘도 지났으니 머지 않아 꽃 소식 들려올 테지 나팔꽃처럼 겨울잠에서 깨어 또 씩씩하게 살아봐야지 ​ 글.사진 - 백승훈 시인

저녁은

저녁은 대다수 사람들에게 저녁은 하루 중 가장 즐거운 때라고 한 내 말동무의 말이 정말 옳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제 뒤는 그만 돌아보고 좀 더 적극적인 시선으로 내 하루의 나머지 시간을 잘 활용해 보라고 한 그의 충고도 일리가 있는 것 같다. 하긴 그렇다. 언제까지나 뒤만 돌아보며 내 인생이 바랐던 대로 되지 않았다고 자책해본들 무엇이 나오겠는가? - 가즈오 이시구로, 소설 '남아 있는 나날' 중에서 분주한 오전과 한낮을 지나 오롯이 나에게로 돌아올 시간, 그 시간이 저녁입니다. 그래서 남은 하루를 어떻게 쓸 것인가 생각하기도 하고 바빴던 일과에서 조금은 느슨해지는 시간입니다. 인생의 저녁은, 조금은 아쉬우면서도 따스하고 조급하면서도 여유로운 시기입니다.

침묵에 대하여

침묵에 대하여 대개 강하고 과묵한 사람이 침묵하는 이유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인데, 그는 단지 말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강하다는 평을 듣는다. - 윈스턴 처칠 말을 많이 하면 헤프다, 알맹이가 없다는 소리를 듣고 말을 하지 않으면 진중하다, 속을 알 수 없다는 소리를 듣습니다. 조금 알아서 시끄러운 경우도 있고 아예 몰라서 침묵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적당하다는 것. 가볍지 않으면서, 답답하다는 소리를 듣지 않으면서 자신을 드러내는 것. 적당하다는 건 어디쯤일까요.